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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2017.12.24)
설교자     차용철 목사
예배명     주일오전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1:23
 
 
본문 내용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Content

<서언>

  유다 갈릴리 나사렛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요셉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을 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는데 마리아가 임신을 한 것을 알고 그와 조용히 결별하려 했습니다. 그 때 밤 꿈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로 잉태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7:14에 나온 대로 하나님이 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앞으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 말을 받아 들여 아기가 탄생할 때까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마1:18-25).  '임마누엘'(עמנואל, Εμμανουηλ, Emmanuel)은 직역하면 עמ(함께)+מנו(우리)+אל(하나님)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God with us)입니다. 이에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 '임마누엘'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보려 합니다.

 

<본론>

     1.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으로 계셨던 분입니다. 미가5:2에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였습니다. 빌립보서2:6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고 했습니다. 그는 창조사역에도 참여했습니다. 창세기1:26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고 했고, 11:7에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고 했는데, 모두 하나님 자신에 대해 복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언8:30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히1:2, 골1:16).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2,000년 전 사람이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던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8:5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단설 가운데 양자론(養子論, Adoptionism)이 있습니다. '양자'(養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원래 아들이 아닌 사람을 아들로 받아들인 입양자를 말합니다. 원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아들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한 사람으로 거룩하게 독실한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아들로 삼아 특별히 그에게 거하고 그에게 능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선재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동정녀에서 탄생한 특별한 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완전히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이론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히브리 관념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자를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신 분입니다 (요1:14).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골로새서1:15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그가 이 땅에 오심으로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14:9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3. 그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님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14:16-18에 "~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했습니다. '보혜사'(保惠師)는 성령에 대한 별명으로서, 헬라어 'παρακλητοs'(파라클래토스)는 'παρα'(곁에)와 'κλητοs'(부름받음)의 합성어로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영어 성경들에서는 'Helper'(NASB-돕는자) 'Comferter'(KJV-위로자) 'Counselor'(NIV,RSV-상담자)로 번역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겪는 깊은 내면의 고통을 아시고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며 섭리하십니다. 로마서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결언>  

  역사적 예수는 우리를 죄와 그 결과에서 구원하여 모든 눈물과 고통을 없애 주셨습니다 (눅2:8-39, 4:18-19). 이제 성령님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우리 가운데 내주하셔서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주십니다. 사단과 마귀와 귀신으로 인하여, 육체의 죄성과 연약성으로 인하여, 환경의 열악함을 인하여 고통 당하는 것을 아시고 회복시키십니다. 그는 과거에도 임마누엘로 오셨고 지금도 임마누엘이 되어 주십니다.

 

<찬양> 104 곧 오소서 임마누엘


 

주님께 합당한 예물을 드리자 차용철 목사 201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