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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구원 문제에 대한 변론
차용철 2008-10-10 12:00:33 663

 

 

  최근 기독교인 연예인들의 자살이 있었다.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 등이다. 자살 문제가 이슈화 될 때마다 기독교인들에게 자살과 구원 문제에 대한 변론이 생긴다. 기독교 자살자들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할 문제들이 있다. 자살의 원인, 자살의 가능성 확인, 자살 예방 교육, 자살자 장례 예배에서의 설교, 자살자 가족의 치유 등 많은 목회적 과제에 관한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 자살자가 나올 때마다 가장 많은 논쟁을 일으키는 기독교인 자살자의 구원문제에 대해서 다루려 한다.

 

  자살자와 구원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양론이 팽팽하다. '자살자는 지옥 간다'는 주장과 '자살은 구원과 상관없다'는 주장이다.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자살이 살인죄이며 회개할 기회조차도 상실한 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죄를 지었다고 해서 또한 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또한 그것이 악령의 역사라고 해서 구원을 상실하고 지옥을 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믿는 자가 자살을 해도 지옥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살을 부추기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 되어야 한다. 다만 기독교인이 자살해서는 절대로 안되겠지만 자살했다고 해서 지옥에 갔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하려 한다. 제시하는 신학적 배경은 개혁주의, 복음주의, 칼빈주의 신학이다.

 

   1.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구원에 대해서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인간이 스스로 가지는 믿음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가진다'고 하는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리는 사도바울과 교부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 칼빈이 세운 진리이다. 이신득구의 사상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와 빌립보서의 핵심 주제이다. 만일 자살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면 인간의 행위(선행)가 구원의 조건이 되거나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되고 만다.

 

   2.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한번 구원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에 말씀과 성령에 의해 거듭나게 하고 한번 거듭난 자는 결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칼빈은 그 진리를 '성도의 견인' '궁극적인 구원'이라고 말했다. 만일 자살죄를 지은 사람이 지옥을 간다면 하나님이 선택한 목적이 허사로 돌아가므로 하나님의 예정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유한하다는 말이 되고 만다.

 

   3. 믿는 자의 모든 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해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원죄(정죄,유전죄)와 본죄(자범죄,요구죄)를 사(赦)함받아 거듭나게 된다 (물론 시간적 순서가 아닌 논리적 순서임). 과거의 지은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모두 용서받는다.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눈같이 씻음 받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을 자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죄값을 십자가 죽음으로서 다 치루었기 때문이다. 그 구원의 방편은 하나님이 구약시대 때부터 제시한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히브리서의 핵심 사상이다. 본인이 지은 본죄 중 자범죄는 우상숭배, 간음, 도둑질 등이 있다. 그 모든 죄들이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만일 살인죄를 지었다고 해서 지옥에 가야한다면 다른 죄들을 지은 자도 지옥에 가야한다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자살죄도 타살죄와 동일한 죄이다. 다만 자살죄를 타살죄보다 더 큰 죄라고 말하는 것은 자살죄는 타살죄와 달리 회개할 기회가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자범죄에 있어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만일 자살죄를 지은 자가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효과를 무효로 돌리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4. 죄를 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용서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현상적으로 보면 이미 거듭난 자라 해도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기 전까지는 계속 범죄하며 살아간다. 때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거듭난 자라 해도 사함받지 못할 죄가 아닌 일반적으로 계명을 어긴 자범죄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요구죄는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 그리고 거듭난 자라 해도 죽기 전에 자범죄나 요구죄를 모두 회개하고 죽는 것은 아니다. 죄인 것을 알고도 회개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죄인 줄 몰라서 회개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알고도 회개하지 못하는 경우는 사고 등으로 인해 기회를 얻지 못해서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이고, 몰라서 회개하지 못한 자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해서이다. 어떤 경우이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범죄나 요구죄 때문에 구원의 은혜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책망과 심판의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그런 죄들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고 지은 죄이든 모르고 지은 죄이든 회개한 죄이든 회개하지 못한 죄이든 모든 죄 값을 이미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이미 그리스도의 믿을 때에 법적으로 이미 용서받은 것이다. 그것이 은혜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자범죄를 회개해야 용서받는다고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용서해 주신 것을 확증받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회개는 용서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의의 수단인 것이다. 만일 자살죄를 회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용서받지 못해 지옥에 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효과가 무효로 돌아간다는 말이 되고 만다.

 

   5.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의미의 내용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한 가룟유다와 사울왕을 예로 든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불택자로 선언했으니 지옥에 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옥에 간 자가 자살을 했다고 해서 '자살한 자는 지옥에 간 자'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사울왕은 천국 갔다고 확신할 수도 없지만 지옥 갔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이 그를 부리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기 때문에 지옥간 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사무엘을 찾아갔을 때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까지 하기도 했다. 그의 일생을 두고 함부로 구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다. 혹 그가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가정을 해도 그가 자살한 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나타난 범죄의 한 단면으로 보아야지 그 자살한 범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21:8에서 살인자 등은 유황불 못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성구는 지옥에 간 사람들의 대표적인 죄행을 기록한 것이지 그와 같은 죄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다. 믿는 자는 그런 죄가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해 주셔서 그런 죄가 사해졌고, 믿지 않는 자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것이 증거로 제시된다는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독교인 중 자살한 사람에 대해 함부로 지옥 갔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자살한 자는 교회생활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한 자라면 자살은 했을지라도 구원받은 자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은 영적으로 악령의 사주일 수도 있고, 심리적으로 우울증일 수도 있고, 의학적으로 신체 호르몬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일 지라도 그것이 구원문제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은 절대로 자살해서는 안되며, 자살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자살을 막는다는 구실로 성경의 중요한 교의를 범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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