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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사역과 예언기도
차용철 2002-03-12 10:38:01 569

작금에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교회 개혁과 예배 갱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 예배 갱신은 이른바 예배 갱신을 위한 전쟁 선포 라고 부를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배 갱신의 방편으로서는 열린예배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열린예배는 두 가지 관점에서 시도되고 있는데 하나는 예배 공간과 예배 순서와 예배 소재들을 불신자나 초신자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바꾸려는 시도이고, 하나는 성령의 임재를 통해 영적 감동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 중에서 후자의 노력은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요즘 부흥회에는 관심은 갖지 않아도 성령의 기름부음에 관련된 집회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최근 미국에서 능력 사역을 하는 부흥사들의 집회나 찬양 사역자들의 집회에 성황을 이루는 것이 증명하고 있다.

나는 그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시대에 돌파구를 찾는 한 유력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그런 부흥의 물결이 대집회에서 개교회까지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물론 극단적인 보수교회들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한편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그것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능력 사역에서 성경적이지 못한 부분들을 많이 보아서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능력 사역을 하는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사역을 한다 해도, 성경적으로 모순이 있는 혹은 보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부분들은 하나씩 시정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능력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이 안수를 하면서 쓰러트리는 것을 영적 파워의 척도로 생각하고 있는 점,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지혜의 말씀 사역 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이른바 예언기도 이다.

미주 지역의 능력 사역자들이나 능력 사역을 하는 교회들에서는 예배 시간에 예언을 간혹 하기는 하지만 개인을 대상으로는 하지 않는다. 특히나 예배 중 헌금봉투를 들고 헌금자에 대해 예언하는 것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유독 한국교회의 능력 사역자는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헌금자에 대한 예언기도를 한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적 상황을 잘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에는 오랫동안 헌금 축복기도를 해 왔다.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실어주기도 하고 강대상에서 예배시간에 헌금자를 호명하면서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그런 축복기도는 얼마든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합리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견강부회식의 이론일 뿐, 사실은 교인들이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더 좋아한 것은 그것이 성경적으로 옳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복신앙과 보상심리에 의한 발로였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기에 예배에서 축복기도를 해주면 실제로 헌금이 더 많이 나온다. 한국 능력 사역자들이 미주 지역의 선진 예배를 본받아 예배 개혁을 하면서도 재정적 문제 때문에 그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헌금 축복기도를 예언기도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예언기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로 부르셨다면 성경의 범위 안에서 예언 사역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제 삼는 것은 요즘 한국에서 행해지는 예언 사역의 형태이다.

예언 사역의 폐단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예언 사역자들의 부정확한 선견력(先見力)이다. 예언 사역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사역이다. 일반적으로 예언 사역자들은 기도할 때 자신이 본 그림이나 들은 음성이나 느낀 감정을 해석하여 전달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님께로 온 것도 있고 사단에게서 온 것도 있고 자기 마음의 확신에서 온 것도 있다. 비록 하나님께 온 것이라 해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바른 해석이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그 많은 출처와 경로와 표현이 항상 하나님의 뜻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어떤 여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 예언 사역자에게 신학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듣고 신학을 했다. 신학을 하던 중 또 다른 예언 사역자에게 예언 기도를 받았는데 신학을 계속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겠다고 계속 다른 사역자들에게 예언기도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도합 6명의 사역자에게 예언기도를 받았다. 종합해 본 결과 3명은 신학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3명은 신학을 그만 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는 갈등하다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 이름있는 사역자를 찾아가 예언기도를 부탁했다. 그 목사님도 혼동스러웠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어떻게 느꼈든지 간에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 마음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고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자유함을 얻어 자신의 마음대로 했다. 그만 둔 것이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예언 사역자들의 무분별한 예언으로 말미암은 해프닝이다. 예언 사역은 이처럼 정확성을 얻기가 힘든 사역이다. 그러므로 예언 사역은 항상 성경 말씀에 제재를 받아야 하며 절제해야 한다.

둘째는 성도들의 신앙적 타락이다. 믿음에 진보가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예언 사역이 미래를 알아 맞추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알려 주기를 원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미래에 자신을 어떻게 사용할 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비젼을 갖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현재의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는지 알고 순종하려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객관적 계시인 성경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주관적 예언을 객관적 말씀보다 앞세우는 것이 문제이다. 그 예언을 믿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어떤 60세 정도 된 목사님이 있었다. 그는 목회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언 사역자로부터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는 예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실제적으로 보람있는 일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실 것이라는 기대감만 가지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 그 영향으로 사모님 자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예언 사역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룰 가운데 하나는 듣는 사람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언 사역에 경험이 있는 자라면 대부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전달해 주곤 한다. 예언 듣기에 몰두 한 사람들은 그 예언의 내용에만 도취되어 의지적인 노력을 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을 방임에 내어 주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그 예언으로 교만하게 되거나 나태하게 되기 쉽다.

나는 은사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또한 그들이 예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역자라 해도 개인적 예언은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 예언 사역에 뛰어드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목회자가 선지자적 사명이 있다고 해서 일반 목회 사역에서 은사적 예언을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적인 예배 시간에 헌금자를 위한 예언기도를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것은 은사 활용 차원에서 보나 예배 갱신 차원에서 보나 교회 개혁 차원에서 보나 금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교회 성장 자체를 위한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성도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려는 노력보다 성경적인 신앙의 정체성을 세워 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주 지역의 선진 기독교 문화와 예배 형태를 본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옳지 못한 것까지 무비판적으로 본받으려 하거나 그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하지 않는 것까지 만들어서 하는 것은 비록 예배 갱신을 슬로건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예배 갱신을 방해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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